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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세종대왕이 가장 사랑했던 넷째아들 임영대군의 묘역과 사당 그리고 의왕 능안마을

제가 살고있는의왕시는 유독 한글과 인연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물론, 제가 모르는 더 인연 깊은 것들도 있겠지요. 


임영군의 사당과 묘역도 그 중 하나입니다. 임영대군은 세종대왕이 총애했던 넷째아들로 내손동 31번지 일원에 가면 임영대군의 사당과 묘역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포일동 양지편 마을에는 한글학자인 이희승 박사의 생가가 있고, 계원예술대학교 뒤로 올라가면 갈미한글공원이 있습니다. 이희승 박사의 생가만 아직 못 가봤네요. 


나머지 곳들도 차차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임영대군은 세종대왕이 특히 총애하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임영대군은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뒤 처음 낳은 아들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문,무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세종대왕은 몸이 아플 때 궁궐을 나와 임영대군의 집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는 등 임영대군을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영대군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임영대군에게 화포와 화차 제작을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의 총애 받은 임영대군  




▲ 임영대군 묘역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의 가장 빛나는 왕이자 아직도 많은 분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임금입니다. 그런 세종대왕의 많은 총애를 받은 임영대군이 왜 의왕시 내손동에 와서 터를 잡았는지 궁금했습니다. 임영대군이 처음 내손동 능안마을을 찾았을 때는 깊은 산골이었을텐데 말이죠. 


여러기록에 따르면 임영대군이 내손동 모락산 자락으로 은신한 것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때문이라고 합니다. 임영대군의 형이자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인 단종 임금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합니다. 그러자 임영대군은 한양을 등지고 도성 밖으로 나와 산중에 은거하며 살았는데 그곳이 바로 모락산 자락 내손동 능안마을인 것입니다. 


임영대군은 모락산에 토굴을 짓고 자신의 신분도 숨긴채 살았으며 매일 산 정상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나라의 안녕을 빌었고, 강원도 영월 방향을 바라보며 귀향간 조카 단종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락산의 이름이 이때부터 서울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의 모락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명 유래와 관련해서는 다른 이야기들도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가 내손2동이고, 임영대군 사당과 묘역이 있는 내손동 31번지는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능안마을입니다. 능안마을에는 임영대군 후손들이 오래전부터 모여살고 있으며 지금도 후손들이 능안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임영대군 묘역 및 사당 찾아가는 길  


내손2동에서 백운호수로 향한 뒤, 백운호수 삼거리를 지나면 오른편에 장어집이 하나 보입니다. 장어집 바로 앞 길이 능안마을로 향하는 길입니다. 잘 보시면 임영대군 묘역 및 사당이라는 이정표도 보입니다. 그렇게 능안마을 가는 길로 들어서서 가다보면 백숙집이 보입니다. 





붉은 화살표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백숙집입니다. 이 백숙집 왼쪽에 있는 작은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횡단보도를 따라 담장 너머의 큰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작은 길로 들어가다보면 임영대군 묘소와 사당을 알리는 이정표가 왼쪽에 있고, 오른편에 굴다리가 하나 나타납니다. 




백숙집 왼쪽 작은 길로 쭈욱 들어오셔서 요 이정표가 보이면 오른쪽을 보세요. 굴다리가 하나 나타납니다. 




이 굴다리를 통과하면 임영대군 묘역과 사당이 있는 능안마을입니다. 보행로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앞뒤에서 차가 올 수 있으니 주위를 잘 살피면서 걸으셔야 합니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길이 두 갈래인데요, 왼쪽은 묘역으로 가는 길, 오른쪽은 사당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어디부터 갈까 고민하다가.... 




우선 오른쪽길로 사당으로 올라가보겠습니다. 이게 사당으로 가는 길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길을 따라 그냥 쭈욱 올라가시면 됩니다. 길 좌우에 가정집이 있는데, 이 집도 전주이씨 임영대군파의 후손들 집이라고 합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언덕 위에 사당이 보입니다. 사당을 향해 올라가니 이곳이 왜 의왕 8경(자연)중 하나인지 알 것 같습니다. 주변으로 보이는 경치가 제법 좋습니다. 사당을 등지고 서서 주변을 내려다보니 높은 산 정상에라도 올라온 기분입니다.



 임영대군 사당에 도착  






사당은 잠겨 있습니다. 아마도 임영대군 기신제 때나 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당 앞에 설치된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 사당은 3칸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가운데 칸에 임영대군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다른 방에는 제기와 제복 등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사당은 크지 않지만 전체적인 짜임새가 잘 조화되어 있다는 평을 얻고 있고, 1967년에 전면적인 보수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사당 안에는 기신제 때 사용하는 나무 수레인 교자가 있다고 합니다. 100년이 넘은 도구인데, 기신제 때 사용할 음식을 종가에서 만들면 이 나무수레에 담아서 사당으로 옮긴다고 합니다. 저는 카메라 하나 메고 그냥 올라와도 힘들었는데, 음식을 담아서 올라온다니 대단한 정성인 것 같습니다. 




사당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 안내문에도 그렇고, 다른 자료에 봐도 "원래 마을에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의왕시의 역사를 정리한 의왕시사에 보면 조금 다른 설명이 나옵니다. 


의왕시사 중 <의왕의 문화유산>편에 보면 임영대군 사당이 본래 종갓집 뒤 구릉에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의왕시사 편찬위원 중에는 전주이씨 임영대군 종손도 참여하고 있으니 근거있는 설명인 것 같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를 클릭해보세요. 


클릭! 의왕시사 임영대군 사당 및 묘역 설명 보기





임영대군 사당 담장을 한바퀴 돌면서 둘러봅니다. 사당은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단아한 모습입니다. 해마다 음력 1월 21일이면 전국의 후손들이 모여 이곳에서 임영대군 기신제를 지냅니다. 이날짜는 눈이오나,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꼭 지킨다고 하네요. 



바로 앞으로 내려다보이는 도로는 의왕과천간 고속화도로입니다. 차를 타고 저 구간을 지날 때, 산에 있는 사당을 보면서 '뭐지?'했었는데 임영대군의 사당이었군요. 산 가운데 대형 도로가 놓여서 조금 시끄럽기도 하고, 산세를 망치는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하지만 주변 산세가 워낙 좋아서인지 잠시 내려다보고 있으면 자동차 소음도 음악소리로 들리고, 한적한 기분이 제법 괜찮습니다. 



 이제 다시 임영대군 묘역으로  




사당을 둘러보고 다시 길을 내려와 이번에는 묘역으로 향합니다. 묘역은 아까 보았던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올라가야 합니다. 묘역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면 정면에 창고같은 건물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벽에 <임영대군 묘역> 이라며 왼쪽 방향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길을 물어서 적어 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이 창고 주인이 임영대군 묘역에 관심이 많으셔서 친절하시거나. 




암튼, 길을 따라 왼쪽으로 들어서니 작은 길이 하나 나타납니다. 길을 반쯤 걷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임영대군 사당이 보입니다. 잠시 돌아보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길 끝에 도착하니 오른편 위로 올라가는 돌로된 계단이 나타납니다. 아마도 이 계단 끝에 임영대군의 묘역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무 숲 사이로 난 돌 계단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보니 좌우에 무덤이 하나씩 보입니다. 크기로 봐서는 아마도 후손들의 무덤이 아닐까 싶습니다. 계단을 마저 다 올라서 맨 위에 도착하니 안내문이 하나 있고, 그 뒤로 커다란 무덤이 보입니다. 운동과 담 쌓고 지냈더니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숨이 차네요 ㅠㅠ 






왕릉은 아니지만 그래도 왕손의 무덤인만큼 규모와 형식을 갖추고 있는 듯 보입니다. 3단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문인석과 장명등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안내문을 보니 장명등과 문인석은 최근에 조성한 것이 아니라 무덤을 조성할 때부터 세워진 옛 석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안내문을 읽고 문인석과 장명등을 다시 보니 정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특히, 문인석은 키가 크고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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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대군은 계유정난을 피해 한양을 떠나 깊은 산골, 모락산 자락으로 은거했습니다. 임영대군이 지금 안식을 취하고 있는 묘소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 꽤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주변이 개발되고 멀리 의왕과천 고속화도로까지 보이지만 옛 시절에 이곳은 분명 숲이 우거진 곳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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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앞에는 이곳이 임영대군 묘역임을 나타내는 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묘비에는 <조선국왕자임영대군정간공지묘>라고 씌여 있습니다. 정간은 임영대군의 시호입니다. 


임영대군이 모락산을 처음 찾았을 때는 계유정난으로 많이 괴로웠을 것 같습니다. 임영대군은 눈을 감을 때도 후손들에게 '왕자, 왕손간 분쟁을 일으키지 말것,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 것, 신도비를 세우지 말 것' 등의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형이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본 임영대군으로서는 왕자, 왕손간의 분쟁이 무엇보다 걱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저 안내문에 나와있는 내용 밖에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이런 분의 묘소가 있다니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여러가지 자료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묘역을 다시 내려와 아까 묘역과 사당의 갈림길이 있던 삼거리로 향합니다. 삼거리를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옵니다. 한 아주머니가 묘역으로 오르던 길 옆에 있는 집에서 나오십니다. 


"산소 다녀오시나봐요~ 커피 한잔 드릴까요?"


낯선 아주머니의 호의에 당황해서 괜찮다고 인사만 꾸벅하고는 길을 빠져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산소'라는 말이 귀에 맴돌았습니다. 마치 집안 조상님의 산소를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집에 와서 열심히 인터넷을 좀 뒤져봤습니다.


아하~ 그 집이 바로 임영대군의 종손이 사는 종갓집이었습니다. 아까 저에게 말을 걸었던 아주머니는 아마도 종갓집의 며느리였던 것 같습니다. 이 분은 임영대군 묘역이나 사당을 찾는 분들에게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를 드리고, 커피를 주신다고 합니다. 후손으로서 묘역과 사당을 찾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커피 한 잔 달라고 하고, 이야기 좀 나누다 오는건데 그랬네요. 


임영대군의 후손들이 기신제를 올리는 모습. (출처 = 의왕시사)



임영대군이 모락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것은 한양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산세가 깊어 은거하기 좋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외에는 특별히 모락산이나 내손동과의 인연이 있어서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임영대군이 모락산 자락, 내손동 일대로 은거하면서 그 후손들은 이후 500년이 넘는 세월을 내손동 능안마을을 지키며 뿌리내리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비록 전주이씨는 아니고 능안마을에 사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현재 의왕시 내손2동에 사는 '주민'으로서 어떤 뿌리를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 집안의 어른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동네의 어른을 만나고 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내손2동 그리고 의왕시에 어떤 역사적 유적지와 선조들의 자취가 남아있는지 찾아보고 그 기록을 남겨볼까 합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시작, 동네의 역사를 찾아가고 알아보는 속에서 내손2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 샘솟을 것 같습니다^^ 


다음엔 어디로 가야할지 이제 또 슬슬 찾아봐야겠습니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