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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뒤늦게 올리는 새해 모락산 일출

어려서부터 새해보다는 연말이 더 들뜨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원채 미련을 많이 갖고, 뒤를 잘 돌아보는 성격 탓인지 시작보다는 끝을 더 좋아했습니다. 새로운 일은 항상 기대감 만큼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동반하지만 무언가 끝난다는 것은 이제 그만 생각해도 되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어서 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소심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요. 


그래서 항상 연말이면 기쁜 마음에 늦게까지 술도 마시고, 12월 31일에도 보신각 타종을 다 보고, 늦게 잠들고는 했지요. 그러다보면 새해는 항상 늦잠으로 어중간한 시간에 일어나서 보내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올해는 새해 첫 날 일출을 보기 위해 등산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연말즈음부터 의왕시에서 내걸었던 모락산 일출 행사 플래카드가 자꾸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새해 첫 날, 아내와 함께 모락산 일출보기에 나섰습니다.


7시 30분쯤 일출을 볼 수 있다기에 오전동의 LG 아파트 입구로 갔습니다. 모락산을 한 번도 안 가봤는데, 평소 거기서 산을 오르는 분들을 많이 봤기에 별 생각없이 그리로 향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벌써 산을 오르고 계셨고, 시와 주민센터에서도 나와서 커피나 차를 등산객들에게 나눠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상쾌한 기분으로 산에 올랐는데... 몇 걸음 안 걷다가 '그냥 집으로 가야 하나?' 싶었습니다. 입구부터 눈이 아직 녹지 않아서 미끄러웠고, 산 아래와 달리 산은 너무 어두워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소 산행이라고는 해보지 않았던 저와 아내는 당황했고, 네 발로 기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지? 그냥 갈까?"


그 때, 여기저기서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경험 많은 분들이 렌턴을 비추기 시작했고, 준비성 많은 분들은 아이젠도 착용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의왕시청에서 내걸었던 플래카드에 아이젠을 준비하라는 글을 봤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ㅠㅠ 



▲ LG 아파트 입구 약수터에서 모락산을 막 올랐을 때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내려가기도 그렇고... 아이젠 대신 조심조심 오르기로 하고, 핸드폰을 꺼내 플레시 어플을 작동시켰습니다. 다른 분들의 랜턴 불빛과 함께 그럭저럭 시야가 확보됐습니다. 


어둠과 미끄러운 길은 조금씩 적응이 됐고, 산을 조금 오르다보니 눈도 녹아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체력이 문제였습니다. 평소에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밖에 안 한 탓인지 정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가 힘들었습니다. 


숨이 차다 못해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심지어 구토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이제 걷기 시작한 것 같고, 정상은 아직까지 먼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전날 연말이라고 열심히 먹고, 마신 탓인지... 정말... 이러다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모락산은 의왕시민들이 즐겨찾는 산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보면 아이들도 부모님과 함께 오르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아니 이날 일출을 보러 산을 찾은 분들 중에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제 체력은 그 아이들보다도 못 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편안한 산행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나무 계단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힘들기만 했습니다. 결국 체력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걸음이 뒤처질수록 뒤에 올라오는 분들께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등산로에서 살짝 비켜나 앉았습니다. 


"올라갈 수 있을까?"


아내도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남편인데, 좀 씩씩한 모습을 보이지 못 한 것 같아 좀 민망했습니다. 




▲ 산을 오르다 중간에 겨우 한 장 찍었습니다. 

군포 수리산 방향인가? 제 정신이 아니라서 어느 방향인지 ㅠㅠ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힘들게 일출을 봐서 뭐하냐... 새해 첫날부터 이게 무슨 고생이냐... 이렇게 힘들게 시작했으니 올해는 좋은 일이 있을꺼다...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산을 올랐습니다. 


산을 오르다보니 정상에 도착한 것은 아니지만 전망이 좋은 곳이 나타났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이름을 모르겠는데, 넓은 바위도 있고 주변의 안양, 군포, 의왕의 시가지가 한 눈에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잠시 쉬면서 사진도 찍고, 전망도 구경했습니다. 


그러다... 얼추 시간도 다 되어가고, 더 이상은 정말 못 오를 것 같아서 그곳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아내한테는, 정상까지 오르자고 남자답게 말했지만... 사실... 아내가 '싫어!'라고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 드디어 갑오년 새해 첫 일출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힘들 게 산을 올라 드디어 새해 일출을 만났습니다. 새해 일출을 보게 되면 빌고 싶은 소원들이 무지 많았는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나더군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카메라를 꺼내 찍거나 소원을 빌기 바빴습니다. 저도 아내 옆에서서 하염없이 일출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소원이 생각나지 않아서 급하게 '부모님들과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빌었습니다. 원래는 아이를 갖게 해달라... 돈 많이 벌게 해달라... 등등 구체적인 소원들이 많았는데...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소원에 모두 포함될 것 같네요^^



▲ 춥고 힘들었던 모락산 이제 하산!!




새해 일출도 봤겠다.. 이제 내려갑니다. 좀 더 느긋하게 일출을 즐기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체력이 없어서 정상을 눈 앞에 두고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내려가는 길도 쉽지는 않았지만 올라올 때와 비교하면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 


올라올 때와는 달리 내려갈 때는 여유도 생겨서, 산에 오신 분들에게 인사도 하고 주변도 둘러보면서 내려갔습니다. 올라올 때의 고생은 그새 다 잊었는데, 내려가면서 '담에 또 와?'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 동네산이라고 등산화 하나만 신고 왔는데, 

다음부터는 이렇게 잘 준비하고 와야겠습니다^^



힘들었지만, 그리고 정말 다시 또 모락산을 오르게 될지 모르겠지만(사실 새해 이후로 한 번도 안 가봤습니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힘들게 오른 뒤 일출을 봤다는 기쁨도 있지만 동네 이웃들과 함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새해를 시작했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그날 산에서 본 분들을 다시 의왕 어딘가에서 만나도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함께 산을 오르고 일출을 보는 동안은 정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다정하게 느껴졌습니다. 괜히 말도 걸고 싶고, 새해 인사도 나누고 싶고 그런 기분이었죠. 


평소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길도 잘 못 물어보는데, 그날은 좀 기분이 달랐습니다. 이 느낌이 어쩌면 일출을 본 기쁨보다 더 오래 갈 것 같았습니다. 동네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곳에 항상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 비록 아직까지 모락산을 다시 찾지는 못했지만 그날 이후 열심히 헬스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기초 체력을 좀 키우고 모락산에 다시 한 번 가보렵니다. 그 때는 꼭 정상까지!! ^^ 



♣ 모락산은…


쓰고 보니 힘들었다는 얘기만 쓴 것 같네요. 그래서 의왕시청 홈페이지에서 모락산에 대해서 찾아봤습니다. 그 설명에 따르면... 모락산은 높이 385m의 높지 않은 산이라고 하네요.(근데 왜케 힘들어ㅠㅠ) 그리고 산이 전부 바위로 되어 있답니다. 


모락산이라는 이름이 '수도인 서울을 그리워하는 산'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지명에는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하는데요, 조선시대 때 세조가 단종을 사사하고 왕위에 오르자 임영대군이 모락산에 숨어 지내면서 산 정상에서 '망궐례'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도인 서울을 그리워하는 산'이라는 뜻의 '모락산'(慕落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네요.  


그리고 모락산은 산 정상에서 경수산업도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청계산, 백운호수, 수리산, 관악산까지 보인다고 하네요.  



* 등산코스는 보통 4가지 코스를 많이들 이용하시나봐요...


1코스는 고천동 개나리 아파트 앞 모락산 삼림욕장입구에서 시작해 팔각정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인데요, 1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2코스는 오전동 LG 아파트 약수터 입구에서 시작해, 국기봉, 팔각정을 지나 정상에 오르는 1시간 코스입니다. 


3코스는 내손동 계원예대 후문 문화의 거리에서 출발~사인암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1시간 코스, 


4코스는 포일동천주교성당입구(약수터 옆)에서 출발해서 제1호봉, 제2호봉, 사인암을 지나 정상에 오르는 2시간 코스입니다. 


의왕시 문화관광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