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이야기

내손2동에서 모락산 동쪽 전망대 오르기



햇볕이 유난히 좋았던 지난 해 어느 날 가을. 

운동삼아 마을 뒷산에 올랐습니다. 마을 뒷산이라고 하기에는 산이 좀 크네요^^ 사실 저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운동 후 상쾌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좋지만, 게을러서 그런지 꾸준하지를 못 하네요^^ 


그래도 그나마 제가 좋아하는 운동은 걷기와 등산입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다리를 쓰는 운동이 좋더라구요. 조금만 걸어도 다리에 힘이 생기는 기분입니다.  


"집 가까운 곳에 등산 코스가 있으면 매일 갈텐데..."


게으른 핑계일 수도 있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 마을 내손2동에 보면 등산복과 장비를 갖춘 분들이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손2동 주변에는 등산로가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의왕에서 등산을 하려면 청계산, 모락산, 백운산을 많이 오르는데 내손2동에도 등산로가 있는 것일까요?



 무작정 찾아나선 등산로


그래서 운동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등산객들이 향하던 방향으로 무작정 길을 나섰습니다. 가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주택들 밖에 안 보이던 골목을 요리조리 지나가다 보니 저 멀리 산이 보였습니다. 길도 모른채 무작정 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보기만해도 마음이 숙연해지는 포일성당



그러다 문득 발걸음이 멈춘 곳은 포일성당이었습니다. 포일 성당은 내손2동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제법 높은 곳에 있습니다. 저도 항상 멀리서는 봤지만, 가까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성당은 멀리서보던 것보다 더 웅장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는 아닌데도, 왠지 마음이 숙연해지는 성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잠시 성당과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지만 더 이상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성당 뒤로 올라가면 산으로 이어질 것 같았지만 그러다 산 속에서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데, 서너명의 등산객들이 성당 앞을 지나 산으로 향했습니다. 이때다 싶어서 저도 그 분들 뒤를 따라 산으로 향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길 잃은 어린 양(?)을 위해 등산객들 보내주신 모양입니다. 성당을 다시 돌아보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서둘러 등산객들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등산객들을 따라 성당 뒷편의 길을 오르다보니 테니스 코트장과 넓은 공용주차장이 보였습니다. 내손2동에 6년 동안 살면서 처음 와보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마을에 이런 곳이 있는지 정말 몰랐네요. 성당 부근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풍경이 제법 좋아보였습니다. 이날 날씨도 참 화창했거든요^^




성당과 테니스장을 지나자 굴다리를 만났습니다. 굴다리 위를 보니 서울외곽순환도로인 것 같았습니다. 6년 만에 처음보는 풍경 하나하나가 모두 신기했습니다. 



 드디어 산으로

굴다리를 지나자 이번에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등산객들은 오른쪽으로 향했고, 저도 오른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산길이 펼쳐졌습니다.


산길이 나오자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길을 따라 무작정 오르다가, 지치면 거꾸로 내려오면 된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습니다. 그래서 슬슬 제 원래 속도대로 걸었습니다. 제가 걸음이 좀 느립니다^^ 천천히 길가의 돌멩이도 보고, 낙엽도, 나무도 보면서 길을 따라 산으로 올랐습니다. 


산은 그리 험하지 않아서 오르막 코스를 제외하면 가볍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살짝 오르다보니 저 아래 건물과 큰 길이 보였습니다. 어디일까 싶어서 유심히 살펴보니 계원예대 뒷편 갈미한글공원 주변이었습니다. 산을 하나 넘으면 이렇게 이어진다는 사실이 문득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6년 동안 살았던 곳이고, 버스만 타도 어디든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산을 오르고 주변을 내려다보니 이제서야 내손2동이 어떻게 생겼고 주변이 어디와 이어져 있는지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문득 내손2동 지도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렇게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열심히 운동삼아 이 산을 오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다보니, 운동기구가 갖춰진 쉼터가 있었습니다. 잠시 벤치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가을날 화창한 날씨에 기분까지 상쾌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방향도 모르기 때문에 무작정 산길을 따라 위로 올랐습니다. 가끔 오가는 등산객들이 있어서 혼자라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모락산 등산로였음을 뒤늦게 확인




잠시 걷다보니 다시 두 갈래 길과 이정표가 나타났습니다. 왼쪽은 전망대, 오른쪽은 모락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이정표를 보고서야 이곳이 모락산 등산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길로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충동적으로 길을 나온 상황에서 정상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정상까지는 2000m를 더 가야하고, 동쪽 전망대는 코 앞이라는 사실이 저를 더 유혹했습니다. 모락산 정산은 열심히 운동을 한 다음에 도전해보렵니다 ㅋㅋ 



 신선이 부럽지 않았던 모락산 동쪽 전망대




이정표를 따라 왼쪽길로 접어들자 금방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전망대라고 하기에는 시야가 좁았지만 그래도 나무가 울창해서 그런 것이니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깊은 숲 속에서 나무가지 사이로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전망대에는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벤치와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드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도 다음에 김밥에 사이다라도 싸가지고 와야겠습니다. 정말 꿀맛일 것 같네요^^ 






전망대 벤치에 잠시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분명 산에 오르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고민과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지금 이순간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가을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는 나뭇잎을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는 것이 별거냐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트레스에 찌들었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과천의왕간 고속도로에는 차량들이 어딘가로 바쁘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지금은 이렇게 한가로이 산에서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산을 내려가면 저 자동차들처럼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리게 되겠지요. 그냥 이렇게 산과 나무와 벗하며 여유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경쟁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마음이 살짝쿵 무거워졌습니다. 


전망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입니다. 주변에 역기, 철봉 등 운동기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에 벌이 많은 모양이네요^^ 괜히 가까이 가지 마시고, 조심하세요~ 



마음이 무거워진 탓인지, 갑자기 쌀쌀한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러고보니 충동적으로 나오느라 옷을 얇게 입고 나왔습니다. 가을 바람에 감기가 들 것 같은 생각에 서둘러 산을 내려갔습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면 되니 산을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하산



그런데... 어렵지 않은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무사히 산 아래로 내려오긴 했는데, 어느 지점에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내려오는 길아 올라올 때 지났던 그 길이 아니었습니다^^;;; 


어찌, 어찌해서 산 아래로 내려와서 보니 처음에 등산객들이 오른쪽 길로 접어들던 그 갈래길이었습니다. 제가 내려온 길은 갈래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드는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길이 이어지니 참 다행입니다. 우리 인생도 각자 다르게 살아도 결국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기왕 같은 길에서 만나는 것이라면 그 길이 '행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굴다리를 빠져나와 다시 성당 앞을 지나서 내려오다보니, 성당 주변의 마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 오를 때는 등산로를 찾겠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마음 편히 아무것에도 쫓기지 않고 집으로 향하다보니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수줍은 새색시처럼 단아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담장 너머로는 잘 익은 감이 익어있었습니다. 집을 지으면서 함께 정비된 마을이었지만 그래도 골목이 살아 있었고, 가을을 닮은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2008년에 내손2동에 이사를 와서 만6년이 지났습니다. 나름 지역과 마을에 관심을 갖고 살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제 자신이 반성이 됐습니다. 이렇게 좋은 등산 코스가 있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으니 아직도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요. 어디가서 내손2동 산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네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데, 물리적인 시간의 양과 정비례하지는 않습니다. 한 순간에 마음이 통해서 절친이 되기도 하고, 수년 동안 함께 했지만 늘 삐그덕 거리기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단지 잠만 자고, 늘 같은 동선으로만 움직이면 마을에 대해서 깊이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직접 나서서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내손2동에는 제가 모르는 얼마나 다양한 것들이 있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이날 발견한 등산로처럼 저를 설레게 할 것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네요^^ 


우리마을, 내손2동 정말 알수록 진국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