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이야기

안도현 시인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수원포럼 안도현 시인 특강

우연한 기회에 안도현 시인의 특강을 듣게 됐습니다. 수원시에서 하는 수원포럼인 것 같은데, 이날 초청자가 안도현 시인이었습니다.


"시를 읽어야하는 이유"로 강연을 한다고 해서 그냥 스윽~ 들어가서 조용히 앉아서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시를 읽어야하는 이유'에 대한 결론이 좀 의외였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거나 뭐 그런 것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결론은 뒤에서 말씀드릴게요^^ 


강연에서는  제가 왜 시를 어려워하는지 그리고 시가 얼마나 아름답고 나와 가까운 것들인지도 알게 됐습니다.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게 됐으니 이젠 친해지는 일만 남은 것 같네요. 


안도현 시인이 말한 "시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교과서' 때문이었습니다. 이건 결국 입시용 공부 때문이라는 말이었는데, 역시 이 나라의 교육이란... ㅠㅠ 



우리가 시를 어려워하는 이유 

시와 친해질 기회가 좀처럼 없는 환경에서 교과서에 있는 시만 겨우 읽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시를 배우면서도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부분에 동그라미 치고, 깨알같은 글씨로 주제, 수사법, 화자가 어쩌고, 뭐 이런 거 적고 외우기 바쁘죠. 이런 공부 다들 해보셨잖아요? 


더구나 교과서에 실리는 시는 주로 시와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시에 입문하기 쉬운 시들 중심으로 게재되어 있죠. 교과서의 크기와 분량이 제한적이다보니 그 크기에 맞는 시가 주로 실렸고. 그러다보니 주로 일제강점기나 해방 직후의 시들이 많은데, 이런 시들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이상 된 것들이라 현재의 생활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죠. (물론, 이 시기의 시들이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였습니다.)


그리고는 졸업하고, 시를 멀리하며 살고 그러다보니 머릿속에는 "시는 어려워"라는 기억만 남아서 시를 더 멀리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가 가진 아름다움과 재미를 느끼기보단 시의 어려움을 먼저 받아들이게 됐다는 말 같았어요.


그러면서 안도현 시인은 여러편의 시를 보여주셨어요. 교과서에 실리려면 몇 장은 넘어가야 할 것 같은 긴 시. 요즘 생활상이 담겨있는 그래서 바로 공감이 되는 시, 아이들의 눈으로 표현한 순수한 동시까지. 


시는 늘 혼자 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읽고 이야기하다보니 묘한 매력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렇게 다양한 시가 존재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시가 달리보이기도 했고요. 



시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날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소개해주실 때였습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우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의 1연인데요, 안도현 시인은 애인이 없는 사람들이 이 시의 1연을 주시해야 한다고 거듭거듭 강조했어요.


"생각해보세요. 아침에 눈이 내린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눈이 내리니까 니가 생각난다'라고 말하는거랑. 이 시처럼 '지금 눈오는거 보이지. 내가 널 많이 사랑해서 눈이 내리는거야'라고 말하는거랑. 어느 게 더 와닿겠어요?"


물론~ 시적인 표현에 대한 설명을 재미있게 하시기 위한 말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눈이 와서 니가 생각이 난다 와 내가 너를 너무 그리워하고 사랑해서 눈이 내리고 있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 큰 차이가 느껴지더라고요. 


안도현 시인은 동일한 현상을 보면서도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내가 보는 세상이 아니라 세상이 보는 나에 대해 노래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시적인 것이라고 설명하셨어요. 그리고 그런 시적인 것이 세상의 '화해'에도 도움이 된다고요.


"저는 시를 쓸 때, 제가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저를 보는 모습이 어떨지 늘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입장을 바꾸고 생각을 하는 것이 시적인 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란 결국 시적인 것이고, 시를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역시 시적인 것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적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고, 갈등과 반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평화와 화해를 원한다면 미스코리아 말고 시집을 뽑자

시를 읽고, 시적인 것을 이해하고  습관화 하면서, 시적으로 생각하는(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노력을 하다보면 갈등과 반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니 시를 읽어라~ 이게 바로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겠네요. 


"저 인간 때문에 정말 회사 다니기 싫다! 쟤랑은 밥 먹기 싫다~"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주변에 꼭 한 명쯤 있는데, 아무래도 제가 시를 멀리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앞으로 제 마음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시를 좀 자주 읽어야겠네요. 


요즘은 그런 소감을 밝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려서 미스코리아 대회를 보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출전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꼭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런 소감을 보면서 뭔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보니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미스코리아가 아니라 책꽂이에서 시집을 뽑아 읽어야했었네요.


하지만, 아무리 시적으로 생각해서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 안 되는 사람, 꼭 있는 것 같은데... 흠... 

그래도 시는 열심히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